마르지 않는 샘물
집착없이 자연스럽게 내맡겨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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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양:스님의 내맡김(동영상) 녹취 (21분)
<집착없이 자연스럽게 내맡겨 봐>
이 세상에 모든 번뇌, 망상 괴로움은 다 이 집착에서 옵니다.
모든 것이 실재라고 여기는 허망한 착각, 허망한 집착,
집착만 내려놓으면 사실은 삶이 너무 가벼워져요. 너무 가벼워져요.
어느 한 가지 정신적인 집착, 물질적인 집착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 대한 모든 집착 마찬가지입니다.
집착을 내려놓게 되더라도 집착하면서 집착을 내려놓는 거예요.
아니 그러면 집착을 안 하면 삶의 원동력이 없지 않습니까?
돈을 벌지 않지 않을까요? 열심히 살지 않지 않을까요?
내가 진급하지 않지 않을까요?
안 그렇습니다. 집착을 하지 않지만 열정을 가지고 삶을 살아요.
순수한 열정이 더 붙어요. 무위의 열정이 붙습니다.
그 힘은요 그 힘과 지혜는 그야말로
‘나’라는 개인적인 개체적인 차원에서 나오는 자아가 아니라
내가 사라진 법계에서 나오는 힘이라서 더 강력한 정도가 아니에요.
훨씬 더 강력합니다.
집착하지 않고 행할 때 더 강력한 힘이 붙습니다. 확실해요.
집착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내 복 밖에 못 갖다 쓰잖아요.
그러니까 집착은 집착대로 엄청나게 하는데
결과는 별로 안 좋아요. 힘은 힘대로 드는데 별로 결과가 안 좋아요.
너무 너무 노력하는데 그냥 노력한 정도의 결과만 얻어요.
그런데 무위로써 하면 집착을 내려놓고 그것을 하면
순수한 열정이 붙습니다.
결과 돼도 좋고 안 되도 좋아. 그런데 나는 이걸 하고 싶어.
그래서 한다. 그럼 즐겁게 하게 되요. 그 일을.
마치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이 음악으로 성공해야 돼’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음악 하는 사람과
'나는 이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이 음악만 하면 너무 행복해서 음악 하는 사람’
누가 더 성공 하겠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면 누가 올라가겠어요. 이것과 비슷하다.
무위로써 행하면 집착 없이 행하면 하되 함이 없이 행하면
더 크게 성공합니다. 이게 삶의 반어예요.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을 때
그때 삶의 무게감이 없어져요. 심각함이 없어져요.
집착하면 심각해져요.
왜? 집착하니까 그거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여기니까
삶이 심각해지고 막 사람이 너무 너무 막 중요한 일이 생기고
심각한 일이 생기니까 삶이 막 긴장돼 있어요. 릴렉스를 못해요.
그러니까 온몸이 긴장이 돼 있으면 몸에 병이 와요.
정신적으로도 긴장이 돼 있으면 병이 와요.
그런데 집착이 없으면 말 그대로 강 위에 떠가는 통나무처럼
물의 흐름에 내맡기고 따라갈 뿐이에요.
뭐 어떤 강?
삶이라는 도도한 이 지혜의 강물에 나를 내맡기고 흘러갈 뿐입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요.
최선은 다하는데 크게 봤을 때 나는 항상 내맡기고 있어요.
뭔지 이런 느낌이 든단 말이에요. 열심히 안 하는 거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요. 그리고 욕심도 있어요.
어찌 보면. 뭔가 욕심이라고 할 수 없는 욕심이 있어요.
발원 발심이 있어요. 열심히 해요. 더 열심히 하는 거 같아요.
열심히 살아요. 더 열심히 살아요.
그런데 삿된 욕심이 아니에요. 순수한 열정이에요.
성공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아요.
남들과 막 비교하거나 막 싸워 이겨야 된다고 생각하거나 이러지 않아요.
그리고 내맡겨요.
고집이 없으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져요. 실제~
이 길을 가도 좋고 저 길을 가도 좋아져요.
예를 들어 옛날에는‘나는 이런 길은 싫고 저런 길만 좋아!’라는
집착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것도 없어요.
인연 따라 가면 되니까 모든 것에 마음이 열려 있어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집착하지 않으니까 난 반드시 저렇게만 해야 돼!
하는 게 없으니까 마음이 열려 있어요.
그러게 되니까 무한한 가능성이 생기기 시작해요.
옛날에는 난 요것만 좋고 저런 건 절대 못 해!라고 생각했으니까
저희는 가능성이 찾아와도 내가 벽을 쳤어요. 담을 쳤어요.
그런데 겉에 요거라는 일이 왔는데 이걸 마음을 열고 받아 들였더니
이걸 캐고는 고구마 줄기를 따라서 무수히 많은 고구마가 딸려 오듯이
이걸 받아들였는데 더 큰 어마어마한 무한한 가능성이
나에게 열릴 수 있단 말이죠.
그런 것처럼 집착하면 삶이 제한됩니다. 삶이 고착됩니다.
내가 보는 눈이 시야가 좁아져요.
그런데 집착하지 않으면 전체를 보게 돼요.
무엇이든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게 돼요.
마음이 활짝 열려 있어요.
이 사람 저 사람 모든 사람에게 마음이 열려 있어요.
과도하게 싫어하거나 과도하게 미워하는 것도 없어요. 집착하지 않으니까~
과도하게 싫고 미운 게 없어요.
마음을 활짝 열고 있어요.
그러니까 무한한 가능성이 마음껏 파도 쳐 들어옵니다.
나는 그것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게 돼요.
무한한 창의성, 창조성, 창발성이 솟아납니다.
내가 내 안에서도 솟아나고 주변에서도 깃들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삶은 완전히 릴렉스 되어 있어요. 여유가 있어요.
그러니깐 남들을 도울 만한 마음에 어떤 여유 이런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지혜는 증장하고, 힘은 빠지고, 자비로워지고,
하는 건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안 되더라도 큰 상처 안 받고 편안하게 삶에 내맡겨요.
삶에 내맡길 때 더 큰 힘으로 열정으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무게감이 없으니까 이럼 어쩌지 저럼 어쩌지 생각 없어요.
심지어 진짜 죽는다 할지라도 어차피 죽을 건데 뭐. 뭐가 괴로운가~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요. 열정을 가지고~
이게 진짜 힘입니다.
우리는 집착하는 거를 반드시 성공해야 되겠다!라는
집념 내지는 끝없는 도전, 포기를 못 하는 정신,
이거를 우리는 사회에서 가장 위대하다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배워왔어요.
그런데 그건 한 가지 정말 지혜로운 지혜가 빠져 있습니다.
포기를 않는 열정 좋습니다. 그런데 적당히 해야 돼요.
즉 한번 실패하면 다시 한번 도전, 또 실패하면 또 도전,
2번 3번까지는 할 수 있죠.
그런데 계속 실패한다. 그럼 오케이 이거 내 일이 아닌갑다.
딱 포기할 수 있는 용기. 지혜.
부처님이 그러셨어요.
3번까지는 항상 다시 도전하고 다시 보자 했는데
그래도 안 되면 깔끔하게 포기했고 포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과도해지면 그건 집착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정신으로 사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열정 가지고 막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에요.
최선을 다해서 해요. 할 때까진 최선을 다해요.
근데 계속 해도 해도 안 되면 바로 깔끔하게 포기해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거 자연스럽게 주어진 일들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억지스럽게 주어진 것은 이게 진짜 나에게 맞나? 를
좀 고민해 봐야 돼요.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예를 들어 그 집안의 자식이 진로를 걱정하고 있다.
근데 부모님 입장에서 이렇게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과도하게 집착하고 고집해서 자식에게 그걸 강요해서
자식이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하게 되면 그건 집착의 결과잖아요.
그 결과는 좋지 않기 쉽습니다.
물론 100 % 라고 제가 이걸 고집할 순 없어요.
그러더라도 잘될 수도 있겠죠. 예를 들면.
그런데 주로가 그럴 수밖에 없어요.
가장 좋은 것은 자연스러운 게 좋습니다 .
무위법은 자연스럽게 행해져요. 사실은.
될 때는요 자연스럽게 됩니다.
누가 그러잖아요.
진급이 안 될라고 그러니까 죽어라고 죽어라고 노력해도 안 되더니
나는 포기하고 편안하게 살았는데도 될라니까
가만히 보니까 주변 여건이 다 맞춰지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진급하게 되더라.
안 될라고 하면 죽어라고 해도 안 되는데,
될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됩니다.
사실은 그래서 삶을 자연스럽게 사는 게 가장 좋아요.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맡기는 게 좋죠.
아이가 난 이거 너무 하고 싶어~ 그럼 부모님이 조언을 할 수 있죠.
나는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두 번 세 번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너 걱정하지 마~ 아빠, 엄마는 너한테 고집은 안 해.
최종 결과는 네가 결정할 수 있게 해 줄게.
그런데 아빠, 엄마 말을 진지하게 들어는 줘.“
하고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이죠.
근데 본인이 결국에는 선택하도록 맡겨주는 거죠.
그러면 오히려 사실은 그 조언에 담긴 엄마, 아빠의 그 조언이
더 비중 있게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그래서 그걸 더 듣게 돼요. 오히려
어쨌든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면 거기에 힘이 붙어요. 그러기 쉽다.
그래서 무위로써 자연스럽게 내맡기고 살 때
그때 이게 삶의 비법이에요. 삶의 지혜에요.
삶이 불성이고 삶이 신성이란 말이에요.
영성이고 하느님이고 부처님이에요. 삶이.
제법실상 제법이 그대로 실상이에요.
삶이 그대로 실상이란 말이에요.
삶이 그대로 법이에요.
생각으로 내가 판단하고 하는 건 중생의 분별망상이구요.
이 분별망상을 싹 빼면 자기 생각을 믿지 않고 분별을 믿지 않고
분별망상을 믿지 않고 그렇게 싹 빼 버리면 뭐만 남아요?
있는 그대로의 삶이라는 실상만 남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이 남습니다.
그럼 생각이 필요해요? 생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생각은 도구로 필요할 때만 임시로 쓸 수 있어요.
근원에서는 내맡기는 거에요.
내맡김이라는 건 분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무분별.
분별망상을 쓰되 함이 없이 한다.
양념처럼 생각을 쓰되 근원에서는 내맡기는 삶을 사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겁니다.
고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겁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성공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안 찾아 올 수도 있어요.
그 말은 뭐냐면 시절인연이 와야지 되거든요. 모든 것은.
아직 시절인연이 안 왔으면 자연스럽게 나는 최선을 다 할 뿐이야.
성공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
나는 성공 안한 이대로 오케이야.
난 성공 안한 이대로 최선을 다해서 삶을 열심히 살 뿐이야~ 하고
즐겁게 누리며 살면 돼요.
남들이 성공했으면 지금 저 팀이 성공해야 될 시절인연입니다.
그걸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박수해 주고 수희찬탄 해서
함께 기뻐해 주세요.
막 속으로 내가 좌절하면서 절망하면서
‘쟤는 저렇게 잘 되는데’ 하면서 질투하면서 이럴 필요 없다.
이제 누구죠? 에픽테토스가 그런 말했습니다.
'남들 앞에 맛있는 음식이 왔다면
그 사람이 그 맛있는 음식을 즐기려 할 때다.
언젠가 그 음식은 나에게 올 것이다.
나에게 오면 이제는 내가 그 음식을 맛있게 즐길 때가 찾아온다.
그러나 아직 내 때가 되지 않았는데 저 사람이 먹고 있는 음식을
강제로 뺏어서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문제가 생겨난다.'
이런 식의 표현을 썼거든요. 맞습니다.
시절인연이 그래서 있는 거예요. 시절인연을 자연스럽게 내맡기세요.
자식이 아직 시집 장가 못 간다고 해서 그걸 막 닦달 할 필요 없다.
시절인연이 오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합니다.
시절인연이 안 오면 아무리 옆에서 막 그냥 별의별짓을 다 해서
붙여 줘두 싫어해요. 자연스럽게 내맡기면 시절 인연 따라
시절인연에 내맡긴다는 무슨 말이겠어요?
그 어떤 방식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거죠.
반드시 이렇게 돼야 돼!라고 생각하면 시절인연에 내맡기겠습니까?
못 내맡겨요. 이렇게 돼야 되는데 왜 이렇게 안 될까? 하고 괴로워하죠.
근데 완전히 내맡기면 돼도 좋고 안 돼도 좋아요.
왜 돼야 된다! 라는 집착, 고집이 없으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까
나한테 아직 그것이 안 왔으면 아직 내가 먹을 때가 아니 구나~
내가 받을 때가 아니 구나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할 뿐이에요. 그냥.
뭐가 괴로운 게 있을까요? 괴로운 게 없습니다. 이렇게 살면
삶은 아~ 정말 하늘에 떠도는 구름처럼
바람의 방향에 완전히 내맡긴 채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 따르다가 인연 따라 사라져요.
우리 삶도 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그렇게
완전히 삶에 내맡기고 살면 그게 삶이 바로 진실이에요.
삶이 바로 부처님이고 하나님이에요.
기독교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삶을 보내 주었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 이런 말을 하잖아요.
그 말은 내 생각을 믿지 말라는 거예요.
분별망상을 믿지 말라는 거예요.
선악과를 따 먹은 게 원죄가 됐잖아요.
분별망상은 좋다 싫다 맞다 그르다 옳다 그르다
내 생각으로 이걸 취해야 된다. 저거는 버려야 된다.
취사 간택하는 마음. 그게 선악과를 따먹는 분별망상 이거든요.
그게 집착심이고 그게 탐진치 삼독이고
그게 절에서 말하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입니다. 근본무명.
즉, 자기 생각을 믿지 말라는 거예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생각은 하되 생각을 믿지 마라.
집착할 거 있으면 집착은 하되 거기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마라.
마음을 내긴 내되 애들이 성공해야지 돈 벌어야지 마음은 내 되
결과에 대해서는 완전히 맡겨 버려라.
과도하게 집착하지는 마라. 성공하기 위해서 최선은 다한다.
그래도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건 내 뜻이 아니다.
하늘에 맡긴다. 이게 내맡김의 자세입니다.
삶에 맡긴다. 우주 법계에 맡긴다.
그리고 나는 뭐를 해요? 씨앗을 뿌립니다.
어떤 씨앗을? 복과 지혜의 씨앗을 뿌립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열심히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써
열심히 이것을 연구하고 계획하고 일하고 하는 것을 통해서
지혜를 증장하고 삶을 살아가는 삶을
최선을 100%로 살아가는 게 지혜를 닦아 가는 거예요.
삶을 받아들이는 게 지혜를 성취하는 거예요.
뭐가 삶을 받아들여야 되는 거예요?
일하는 사람은 직장 있는 사람은 직장 생활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게
삶을 받아들이는 거잖아요.
왜? 지금 나에게 이 직장이 왔으니까 이 직장을 100% 살아 주는 것.
그게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게 불위법 입니다.
삶을 거부 하지 않는 것.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게 불이중도의 실천이고 수행이에요.
삶이 바로 수행이에요.
근데 삶에서 내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삶은 좋았고 저런 삶은 싫어~
난 이런 건 하고 싶고 저런 건 하기 싫어.
이건 자기 생각을 믿는 거잖아요.
그래서 주어진 삶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딴 거 하고 싶은데 이거 싫은데
저 사람은 좋아 보이는데 난 저 일 하고 싶은데 이 일이 싫은데.
나는 주어진 삶은 이거면
원은 세우되 나도 언젠가는 저 일을 하고 싶다~ 하고
마음 속에 발원은 세우 되 지금 나에게 일이 주어져 있으면
이 일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완전히 받아들여서
이 일 속에 뛰어들어서 그 일을 완전히 100% 허용해 주는 거예요.
받아들여 주고.
그게 불이중도의 실천이고 그게 명상이에요.
그게 그 일에 완전히 나를 내맡기는 거잖아요.
무위로써 그 일을 그냥 맡아서 하는 것.
그렇게 완전히 받아들이고 나면 이게 싫었던 마음이 사라집니다.
싫던 마음이 사라져요. 받아들이고 나면.
받아들이기 전에는 죽어도 싫어요.
엊그제 보니까 무슨 사람이 군대 안 가려고 손가락을 잘랐다고 그래요.
그 사람 손가락을 왜 잘랐을까요?
군대 가면 되지 별거 아닌 거를. 왜 잘랐는지 아세요?
군대가 싫어라는 한 생각에 처음에 들었을 거예요.
군대는 무서워 두려워한 생각
- 다음글유대인 어머니 편지 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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